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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보다 동독을 택한 독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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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댓글 0건 조회 14회 작성일 20-11-18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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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독이 1990년에 멸망할 때까지 전 후  40년간 동독인은 480만 명이 난민으로 서독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와 반대 방향으로의  망명자도 있었다. 특히 2차 대전 직후의 혼란시기에는 가족관계 등 개인 사정으로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자도 상당 수 생겨났다.
특히 큰 변화가 생긴 것은 1961년 동서독간에 생긴 장벽(Mauer)으로 인해 자유로운 이주가 불가능해진 이후부터였다.
이런 상황에서 1961년 이후 40년간 7만 명이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주한 것이다.  장벽으로 왕래자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게 되면서 동독정권은 서독에서 오는 이주자에 대해 근본적으로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이들 이주자를 위해 동독 비밀경찰 슈타지(Stasi: Staatssicherheitsdienst)는 동독에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건축물을 세우고 슈타지 직원 120 명이 근무했다.

이들은 일단 모든 이주자를 범죄인으로 간주했으며  밤낮으로 심문을 받아야 했다. 가족은 서로 격리되어 심문을 받았으며 같은 내용의 질문은 3-4 주 후에 다시 반복되곤 했다. 이는 원래 이중간첩을 구분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수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들은 오랜 기간 수용소에 방치된 상태로 있었다. 즉 일단 의심받는 혐의자 신분이 된 것이었다. "정신병자"(Spinner), "범죄꾼(Verbrecher)" 아니면 "빚쟁이 (Schuldner)" 일것이라는 의혹에서 벗어 날 수 없었다고 한다.
슈타지의 입장에서 보아도  '장벽'과 '철조망'(Stacheldraht) 그리고  '자동발사장치'로 보호받아야 하는 국가에 거주하겠다고 자기 발로 들어오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주자 가운데 갑자기 풀려나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정해진 방향은 다시 '서독행'이었다.. 이들 중에는 간혹 이념적인 확신자 즉 공산주의자도 있었는데 이들을 서독으로 돌려보낸 이유는 차라리 서독에 가서 우리를 위한 비밀간첩활동을 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주자의 절반은 속히 서독으로 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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